제목[우크라 침공] EU 난민 정책의 '두 얼굴'…피부색으로 차별2022-04-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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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병승 기자 = 유럽연합(EU)이 또다시 최악의 난민 위기에 처했다.

2015~2016년 시리아 난민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던 당시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은 난민이 EU 국가로 유입되고 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3주 만에 우크라이나를 떠나 국외로 탈출한 난민이 300만 명을 넘어섰다.

난민 발생 속도와 규모에서 시리아 난민 사태를 크게 뛰어넘어 유럽이 2차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엔은 최대 400만 명이 우크라이나를 탈출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보다 더 증가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EU와 EU 회원국들은 이례적으로 우크라이나 난민을 환대하고 있다.

폴란드 등 인접국들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EU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난민 수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3일 열린 EU 내무장관 회의는 러시아의 공격을 피해 EU 회원국으로 오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거주권 등을 보장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앞서 EU 집행위원회는 피란한 우크라이나인에게 빠르고 효과적인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일시 보호 명령' 제도를 가동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우크라이나 난민은 최장 3년간 EU 역내에서 거주 허가를 받게 된다. 또 노동시장 접근이 가능해지고 주거, 교육, 사회복지, 의료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전쟁 이전부터 난민 수용 시설을 준비한 폴란드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15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벌써 수용 한계를 넘는 16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들어왔지만 폴란드 당국은 여전히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과거에 난민 수용을 거부했던 헝가리와 루마니아도 우크라이나 난민엔 관대하다. 헝가리는 자국으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인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루마니아는 우크라이나 난민 50만 명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EU 국가들의 신속하고도 관대한 수용은 다른 지역에서 온 난민을 대하는 방식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EU는 최근까지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여 왔다. 중동,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난민의 유럽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EU 회원국은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물리적인 장벽을 속속 설치하고 있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덴마크, 그리스, 키프로스,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등 12개 EU 회원국은 지난해 10월 국경 장벽 설치 계획을 밝히면서 EU 집행위원회에 장벽설치 비용 지원을 요청했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서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주요 통과국으로 2015∼2016년 시리아 난민 유입 사태로 곤경에 처한 경험이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적극 수용하고 있는 폴란드의 입장 변화는 극적이다.

지난해 벨라루스가 중동 지역 이주민과 난민을 데려와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국경으로 내몰자 폴란드는 군경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이들의 국경 통과를 막았다.

벨라루스는 난민이 독일로 갈 수 있게 폴란드 측에 '인도주의 회랑'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으나 폴란드는 이를 거부했다.

폴란드 정부는 지난해 8월 자국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과 난민을 즉각 강제 추방하고 망명 신청을 거부할 수 있도록 난민 관련법을 제정했다.

폴란드는 2015년 EU 회원국들이 시리아 난민을 분산 수용하기 위한 난민 강제 할당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차별적 난민 정책은 지역에 따른 것일 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이는 우크라이나 내 외국인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백인이 아닌 외국인 중 일부는 버스 탑승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국경 경비병들은 우크라이나인을 먼저 들여보냈고 유색인종 외국인은 뒤로 밀려났다.

우크라이나에 있던 아프리카인 등은 국경을 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차별적 대우를 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한 수단 출신 유학생이 폴란드 국경에 가로막혀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 했던 사연을 소개했다.

폴란드 외에도 대부분의 EU 국가들이 난민을 국적과 피부색에 따라 차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는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는 망명권 부여를 거부하고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난민에게는 거주 허가를 내주고 교육, 취업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글로벌 싱크탱크 이민정책연구소(MPI)의 카미유 르 코즈 연구원은 "다른 난민 집단이 받는 처우가 이토록 대조적인 사례를 최초로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 전문가인 라미스 압델라티 미국 시러큐스대 교수는 "우크라이나인은 백인이고 기독교인으로 인식되고, 아프가니스탄인 등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부 유럽 정치인들은, 심지어 극우 성향의 정치인까지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해서는 '유럽인', '문명인'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수용하는 것을 지지했다.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에 대한 언론 보도도 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랍중동언론인협회(AMEJA)는 지난달 28일 발표한 성명에서 "어떤 전쟁의 희생자들을 다른 희생자들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인종 차별적 뉴스 보도의 사례들이 있다"고 밝혔다.

CBS 방송의 찰리 다가타 기자는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현장 리포트에서 "이곳은, 실례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수십 년간 갈등이 발생해온 곳이 아니다"라며 "이곳은 이런 갈등을 예상하기 어려운, 비교적 문명화됐고 비교적 유럽화한 도시"라고 전했다.

NBC 방송의 한 기자도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를 전하면서 "대놓고 말하면 이들은 시리아에서 오는 난민이 아니다. 이들은 기독교인이고 백인이다. 그들은 우리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보도했다.

AMEJA는 "언론 기관은 특정 분쟁을 다른 분쟁과 비교해 중요도를 평가하거나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며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민간인 희생과 난민 사태는 우크라이나에서와 똑같이 끔찍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아에서는 2011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축출하려는 반군과 정부군의 대치로 내전이 시작돼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까지 66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예멘 내전으로 예멘인 400만 명이 고향을 떠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집권하는 과정에선 수백만 명이 아프간을 탈출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기사원문: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20316106300009?input=119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