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주민 몰려와 백인 대체한다”…대선 앞둔 프랑스 ‘인종주의 음모론’ 기승2022-03-18 13:32
작성자 Level 10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서 극우세력의 전유물이었던 음모론인 ‘거대한 대체론’이 힘을 얻고 있다.

‘거대한 대체’ 주장은 무슬림 등 비유럽인 이민자가 몰려와 백인과 기독교 문명을 대체한다’는 인종주의 음모론이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대표적인 극우정치인 마린 르 펜도 입에 올리기 꺼려할 정도로 배척되어온 백인우월주의 용어이다. 


그러나 최근 중도 우파 공화당의 대선 후보 발레리 페크레스(54)가 이 용어를 사용해 논란에 불을 붙였다고 <뉴욕 타임스>가 15일 보도했다. 그는 지난주 지지자 7천여명이 모인 집회에서 프랑스가 “거대한 대체”를 당할 운명이 아니라며 모두 “들고 일어나 맞서자”고 말했다. 그는 또 극우세력이 이민자를 가리키는 용어를 사용해 ‘서류상의 프랑스인’과 ‘뼈에 새겨진 프랑스인’을 구분짓고, “마리안느(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하는 인물)는 베일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슬림 여성이 쓰는 히잡을 겨냥한 발언이다.

페크레스의 발언이 알려지자, “자크 시라크와 니콜라스 사르코지 대통령을 배출한 전통의 공화당 대선 후보가 어떻게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사회당 대선후보인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페크레스의 발언에 대해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라고 공격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극우세력과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화당 중진 자비에 베트랑은 “거대한 대체는 우리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리옹 정치대학(그랑제콜)의 필립 코르퀴프는 페크레스가 거대한 대체에 합법성을 부여했고 극우의 이념을 대선 경쟁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고 우려했다.

거대한 대체라는 말은 프랑스 작가 르노 카뮈가 지난 2010년 펴낸 책에서 사용한 말이다. 당시만 해도 극우 정치권에서만 일부 소비될 뿐 주류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는 철저히 외면받았다.

거대한 대체는 극우작가이자 언론인 출신 대선후보인 에릭 제무르를 만나면서 주류 정치권의 용어로 변모하게 됐다. 그는 프랑스 중산층의 반이슬람,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며 이 용어를 사용했다.

프랑스에서는 오는 4월10일 1차 대선 투표가 열리고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4월24일 결선 투표를 한다. 지난 11~15일 실시된 프랑스여론연구소(IFOP)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 출마 선언은 하지 않았지만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보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이 25.5%로 1위이고 르펜(17.5%)과 제무르(15%)가 2위와 3위 그리고 그 뒤를 페크레스(14.5%)가 쫓고 있다. 페크레스의 거대한 대체 발언은 결선투표에 오를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삼파전 양상이 전개되자 초조한 나머지 나온 발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판이 거세자 페크레스는 자신의 말이 잘못 이해됐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유럽의 극우운동 전문가인 니콜라 르부르는 그의 해명에 대해 “최근 몇 년 사이 전통적인 중도 우익 중산층 지지층이 우경화 현상을 보인 데 따른 계산된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르부르는 “2010년 이래 중산층 유권자들 사이에 반이민, 반이슬람 정서가 강화됐지만 그동안 정치적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며 “그렇지만 최근 이런 정서가 어떤 분수령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처: 한겨레 신문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기사 원문: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0313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