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조코비치가 쏘아올린 작은 공' ... 호주의 '내멋대로' 이민 시스템2022-01-19 13:40
작성자 Level 10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가 지난 10일(현지시간) 호주 정부를 상대로 한 비자 취소 무효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풀려났다. 하지만 그의 호주 오픈 참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호주 정부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민부 장관 직권으로 비자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 사건은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 입국 허가 문제를 넘어 호주의 ‘문제투성이’ 이민 시스템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당장 호주 법원은 조코비치를 멜버른 시내의 한 호텔에서 5일간 억류한 후 풀어줬지만 같은 호텔에 억류돼 있던 30여명의 망명 신청자들은 그만큼 운이 좋지 못했다고 가디언은 11일 지적했다.

이들은 자그마치 9년이란 시간을 구금센터나 정부지정시설에서 보내고 있다. 조코비치가 머물던 호텔 방 바로 위층에 임시거주 중인 메디(26)는 “시간이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5살에 배를 타고 호주에 도착한 후 크리스마스섬과 나우루섬 등에 있는 이주구금시설을 수년간 전전했다. 메디는 이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 지난 2014년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도 호주 정부가 대체 구금 시설로 지정한 호텔 방과 구금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호주 정부는 배를 타고 도착한 망명 신청자들을 무기한 구금시킬 수 있는 이례적인 권한이 있다. 특히 호주 이민부 장관은 조코비치 사건에서 확인됐듯이 호주에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되는 이들의 비자를 취소시킬 수 있는 직권까지 갖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호주 이민부가 권한을 오남용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일례로 지난해엔 한 무국적 남성이 살인 혐의로 잘못 기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이와 상관없이 그의 보호 비자가 취소되면서 그는 남은 생을 구금된 채로 보낼 위기에 처하게 됐다. 또 한 살부터 지금까지 호주에서 자라온 35세 남성이 불법 오토바이 갱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비자가 취소돼 뉴질랜드로 추방될 위기에 처한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그가 살던 주에서는 해당 갱단이 불법 단체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연방법원은 당시 이민부 장관의 결정을 두고 “부당하고 비논리적이며 법적으로 불합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와 유엔 전문가들은 호주 정부의 무기한 구금 시스템과 이민부의 직권이 매우 유해하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심지어 이민부 관계자들까지 “고삐 풀린 권력엔 문제가 있다”며 목소리를 낼 정도다. 크리스 에반스 전 이민부 장관조차 “내가 너무 큰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민부) 장관이 신 노릇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관들의 결정이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이들의 결정에 대한 항소권까지 없을 때도 있다”며 우려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정치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코비치 사건이 호주 정부의 공정성과 능력에 의문을 품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 조코비치를 풀어준 법원 판결로 엄격한 코로나19 관리에 금이 갔고, 백신 면제를 두고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책임을 떠넘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더불어 모리슨 총리의 강경 이민정책도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민부 장관을 지낸 2013~2014년 선박을 이용해 호주로 향하는 난민을 군대를 동원해 해상에서 막아 돌려보내는 이른바 ‘자주국경작전’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당시 난민 수천 명이 되돌아가거나 수용소에 억류됐고 인권단체들은 비인도적 대응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일레인 피어슨 호주 지국장은 뉴욕타임스에 “조코비치가 우연히 호주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강제 구금 시스템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고 말했다.

출처: 경향신문

원문기사: https://m.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201121624001#c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