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는 호주에서 역설적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착취하는 문화가 만연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했다고 호주 공영 ABC방송이 2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현지 취업비자나 영주권을 얻기 위해 호주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취업 알선업체와 고용주가 영주권을 빌미 삼아 장기간 무보수 노동을 강요하는 ‘현대판 노예’ 사례가 1만5000 건에 달한다는 것이다.
ABC는 2년 전 호주에 입국한 중국인 부부를 소개하며 이들이 숙박업소 및 관리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이민 알선업체의 소개를 받았지만, 막상 영어 구사 능력 부족 등을 이유로 당초 계약한 분야와 전혀 다른 허드렛일을 무보수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체 측은 계약 당시 호주 영주권을 딸 수 있게 해주겠다며 6개월 간 무보수 노동 기간을 설정했으나, 이후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이 기간을 2년 이상 늘렸다.
부부는 “모든 호주인이 우리처럼 초과 근무를 하고도 아무런 수당을 못 받고 일하는 줄 알았다”며 “나중에 임금 착취를 깨닫고 고용주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추방될 수 있다며 협박했다”고 말했다. 돈을 주고 취업비자를 취득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용주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어 노동의 대가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호주의 노사 관계 감독 기관인 공정근로옴부즈맨(FWO)과 변호사를 접촉해 이 문제를 신고했으며 현재 고용심판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호주 전역에서 1만5000 건에 이르는 임금착취 피해 사례 가운데 당국에 적발된 건수는 20% 미만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또 “매년 호주에 유입되는 수많은 이민자 중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달 말 기준 호주의 법정 최저시급은 20.33호주달러(약 1만7000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유학생과 단기 체류 노동자 등은 평균 12호주달러의 시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언어 문제와 관련 법규의 장벽 등으로 절대적 약자인 이들은 시민권자가 된 뒤에도 임금착취를 당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고 ABC는 전했다.
한편 FWO는 이달 초 호주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콜스의 임금착취 행위를 대거 적발했다. 당국은 콜스가 2017년 1월부터 2020년 3월까지 직원 7500명에게 1억1500만 호주달러(약 976억 원)의 임금을 덜 지급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에는 호주 최대 편의점 체인 세븐일레븐이 유학생 등 직원을 상대로 최저임금의 절반만 지급하며 조직적으로 임금을 착취한 사실이 적발돼 경영진이 줄사퇴하기도 했다.
조선비즈 기사 이슬기 기자 wisdom@chosunbiz.com 원문기사: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hm&sid1=104&oid=366&aid=0000782044 |